명예의 전당

여 규 태

관리자 2019.10.14 조회수 466

여규태 용인대학교 총동문회 명예 회장
 

아무리 연습해도 실력을 보여 줄 기회가 없었던 소공동 시절

전쟁이 휩쓸고 간 폐허의 50년대 후반, 예학의 고장 영주에서 자란 여규태 명예회장님. 한가지 특기가 있어야 성공하리라 믿고 중학교 때 유도를 선택했던 회장님은 군복 입은 공병대 아저씨가 회장님의 유도 사범을 경찰서 연습장에서 내다 꽂는 모습을 보고 눈이 번쩍 뜨이셨다고 한다. “그 군인 아저씨가 용인대 1회 선배인 김덕수 선배였지. 그 선배가 멋있어서 용인대에 입학하게 된거야.” 그렇게 용인대가 서울 소공동에 있던 시절, 회장님은 3회 입학생으로, 영원한 용인이자 유도으로서의 삶을 시작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새벽 4시 통행금지 해제와 동시에 100여개가 넘는 남산 계단을 올라가서 소나무에 고무줄을 매어놓고 몸 부딪히기를 아침 일과의 시작으로, 오전에는 학과 수업, 오후에는 실기 수업을 하는 것은 물론, 당시 교장선생님이셨던 이제황 선생님으로부터 별도의 정신수양까지 마쳐야하는 고된 수련을 견뎌내셔야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까? 당시 담배와 술을 마시면 퇴학 되는 엄격한 학칙까지 더해져 입학생 50명중에 12명만이 졸업할 수 있었다고 하며, 전쟁 직후라 모든 것이 귀했던 시절, 콩나물국 한 그릇, 좋은 날은 된장찌개 한 그릇으로 운동해야 했지만 배고픔보다 더한 괴로움은 시합을 할 수 있는 대회가 없으니 운동을 해도 빛을 볼 수 없는 것이라고 회고하셨다.

 

인생을 살면서 알아야 할 모든 것을 가르쳐준 유도, 그리고 나의 사랑 용인대.

대학을 졸업하던 해 건설회사에 입사하여, 용인대에서 길러온 강철체력과 유도수련을 통한 도전 정신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현장과 전국 댐 공사 현장을 누비신 회장님. 공대를 졸업한 직원들과 경쟁하기 위해 주경야독하며 전문지식을 쌓고 경험을 쌓아온 동문 회장님은, 건설업과 유도를 일생의 직업으로 삼아 사회 곳곳에서 공헌해 오셨다.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유도수련 하던 때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말씀처럼, 유도와 용인대는 체육인으로, 기업인으로 성공할 수 있도록 정신적, 육체적 성장과 인격과 지식을 완성 시켜준 여규태 총동문 명예 회장님 인생의 전부이다.
 

전액장학금으로 나를 키워준 모교에 보은의 마음으로 기부

모교 발전을 위해 큰 기금을 선뜻 내놓게 되신 이유를 묻는 질문에 소공동 시절내가 등록금이 없자 이제황 교장선생님 주선으로 등록금을 면제받고 공부하며돈을 벌면 유도회에 봉사하겠다고 스승님께 약속했으니 당연히 보답해야지.” 라고 말씀하시며더 많은 금액을 기부해야하나 그에 미치지 못하여 부족하게 느끼신다고 하신다아마도 이런 아름다운 보은의 정신이 강원도 유도회 부회장을 시작으로 오늘날 한국유도원 이사장 용인대 총동문회장과 명예회장직까지 역임 하게 되신 밑거름이었을 것이다특별히 사랑하는 용인대 후배들에게 고된 훈련을 견뎌내는 정신으로 남보다 더 연구하고 노력하면그 분야에서 최고가 된다.”고 하시며 사회와 국가 및 인류에 공헌하는 사람으로 성장해 달라.”라고 당부하신다